현관문을 닫고 들어서는 아이의 어깨가 유난히 무거워 보이는 날이 있습니다. 묻는 말에는 대답조차 퉁명스럽고, 방 문을 쾅 닫고 들어가 버리는 뒷모습을 보노라면 부모의 가슴에도 서늘한 바람이 붑니다. ‘내가 뭘 잘못했나’, ‘쟤가 왜 저러나’ 하는 원망과 답답함이 밀려오지요. 하지만 그 닫힌 문 너머에서 홀로 거친 숨을 몰아쉬고있을 아이의 마음을 떠올리면, 화가 났던 마음도 어느새 아린 자책으로 바뀌곤 합니다.
청소년기는 아이에게도, 그리고 그 아이를 키우는 부모에게도 참으로 혹독한 계절입니다. 아이들은 어른이 되는 길목에서 낯선 감정들과 마주합니다. 몸은 훌쩍 자랐는데 마음은 여전히 불안정하고, 세상은 자꾸만 어른의 잣대로 무언가를 증명하라고 다그칩니다. 내가 누구인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지 못한 채 안개 속을 걷는 듯한 막막함. 그 두려움을 감추기 위해 아이들은 때로 날카로운 가시를 세우고, 불쑥불쑥 반항의 언어를 뱉어냅니다. 그 가시는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방어막이자, “나 좀 도와주세요, 나 지금 너무 힘들어요”라는 무언의 신호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그 사실을 잊어버립니다. 아이의 거친 태도와 퉁명스러운 말버릇에 상처를 입고, 부모 역시 생업과 일상에 지쳐 마음의 여유를 잃어버리기 때문입니다.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네가 뭔데 나한테 이래”라는 목소리가 튀어나오는 것은 어쩌면 지칠 대로 지친 부모가 보내는 비명일지도 모릅니다. 아이를 잘 키워내고 싶다는 간절함이 클수록,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현실 앞에서 느끼는 좌절감은 더욱 깊어지니까요.
저 역시 부모로서 아이와 마주 앉아 숨이 턱턱 막히는 순간들을 수없이 겪었습니다. 아이는 아이대로 마음의 문을 닫아걸고, 저는 저대로 지칠 대로 지쳐 서로에게 상처만 남기던 밤들이 있었습니다. 불을 끄고 누운 깜깜한 방에서 '내가 과연 좋은 부모일까' 자문하며 눈물 흘리던 날도 부지기수였습니다. 아이를 이해하고 싶으면서도 문득문득 치밀어 오르는 서운함과 무력감에 마음이 옹졸해지던 부끄러운 기억들도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지친 부모와 방황하는 아이, 이 둘 사이의 간극은 하루아침에 메워지지 않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받으면서 마음에는 크고 작은 생채기가 납니다. 하지만 기억해야 합니다. 지금 이 시련은 우리가 서로를 미워해서 겪는 일이 아니라, 서로 다른 세계를 가진 두 사람이 진정한 의미의 가족이자 타인으로 자리 잡는 아픈 과정이라는 것을요.
방황하는 아이에게도, 지친 부모에게도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냉정한 평가나 따끔한 충고가 아닙니다. "너 왜 그러니"라는 다그침 대신, "그래, 그동안 참 힘들었겠구나" 하는 따뜻한 수용입니다. 아이의 방황을 부모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이기보다, 인생의 거친 파도를 넘는 아이의 서툰 몸짓으로 바라볼 수 있다면 우리의 마음 풍경은 조금 더 너그러워질 수 있습니다.
오늘 하루도 거친 세상을 견뎌내고 돌아온 아이의 눈빛을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그리고 동시에, 그 아이를 품어내느라 애쓴 나의 지친 어깨도 토닥여봅니다. 우리는 모두 서툴지만 사랑하고, 아프면서도 자라나는 중입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지치고 흔들릴 때 서로의 온기에 기대어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부모와 자식의 시간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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