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화면에 또다시 '저장 공간 부족'이라는 알림창이 떴습니다. 사진을 정리하려고 보니, 어제 찍은 쓸데없는 하늘 사진부터 시작해서 작년에 지운 줄 알았던 게임 앱 데이터까지 온갖 잡동사니가 가득하더군요. 폰이 버벅거릴 때마다 우리는 불필요한 파일들을 과감하게 휴지통으로 드래그합니다. 그래야 가볍게 돌아가고, 꼭 필요한 순간에 버벅거리지 않고 작동하니까요.
우리 마음도 이와 똑같지 않을까요? 매일 학교에서, 학원에서, 또 스마트폰 속 수많은 인간관계와 정보 속에서 우리는 수많은 걱정을 다운로드받습니다. '이번 시험 망하면 어쩌지?', '친구들이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면 어쩌지?', '나는 커서 과연 뭐가 될 수 있을까?' 보이지도 않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마음의 저장 공간은 이미 포화 상태입니다.
지난장에서 우리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내 삶의 운전대를 그분께 맡기는 것이라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거창하고 멋진 고백이 책상 앞에 앉아 기도할 때뿐만 아니라, 당장 내일 치르는 수학 시험 앞이나 친구와 다툰 쉬폰 시간 같은 '진짜 일상'에서는 어떻게 펼쳐질까요? 믿음이라는 것은 교회 예배당 문을 나서는 순간 벗어버리는 교복 양말 같은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가 매일 신고 뛰어다니는 운동화처럼, 흙투성이가 되더라도 매일의 삶 속에서 직접 닳고 부딪히며 증명되어야 하는 것이죠.
여기 지우라는 아이가 있습니다. 지우는 학교에서 알아주는 '계획형 인간'입니다. 플래너에는 1분 1초가 빽빽하게 적혀 있고,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기면 심장이 쿵쾅거리고 패닉에 빠지는 성격입니다. 하루는 미술 수행평가가 있던 날이었어요. 전날 밤새워가며 준비한 물감 팔레트를 그만 교실 바닥에 쏟고 말았습니다. 아끼던 셔츠는 얼룩이 지고, 제출 시간은 삼십 분밖에 남지 않았죠. 눈물이 핑 돌고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습니다. '내 계획은 완전히 망했어. 망했다 고교 생활.'
그때 지우는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 하나를 붙잡았습니다. 며칠 전 설교 시간에 들었던 말씀, 그리고 밤마다 속삭이던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고백이었죠. 덜덜 떨리는 손으로 물티슈를 집어 들며 지우는 속으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 지금 너무 당황스럽고 망한 것 같아요. 제 힘으로는 이 얼룩을 어떻게 할 수가 없네요. 도와주세요.'
놀랍게도 기도가 끝나는 순간, 신기할 정도로 마음 깊은 곳에서 차분함이 찾아왔습니다. 주변 친구가 다가와 자신의 물감을 빌려주었고, 미술 선생님은 사정을 듣고는 조금 더 시간을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물론 모든 일이 지우의 계획대로 완벽하게 굴러간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날 지우가 배운 것은 완벽한 계획보다 더 소중한 것이었습니다. 바로 예상치 못한 폭풍우 속에서도 나를 붙들고 계신 하나님을 일상 속에서 실시간으로 경험하는 것이었죠.
우리의 믿음은 이처럼 아주 사소하고 구체적인 순간에 빛을 발합니다. 믿음이란 거대한 산을 움직이는 초능력 같은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내가 가진 작은 물감통을 엎질렀을 때, 하늘이 무너진 것 같은 불안 속에서 "그래도 내 인생의 드라이버는 하나님이시지" 하고 심호흡을 한 번 크게 내쉬는 것, 바로 그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하루를 살아가면서 어떤 골치 아픈 문제를 마주하셨나요? 혹은 내 힘으로는 도저히 수습할 수 없는 관계의 엉킴이나 성적표를 받아 들고 한숨을 쉬고 계시나요? 그렇다면 기억하세요. 하나님은 여러분이 멋지고 완벽한 모습으로 예배당에 앉아 있을 때뿐만 아니라, 꼬질꼬질하고 엉망진창이 된 채 일상의 한복판에서 울상 짓고 있을 때 가장 먼저 여러분의 손을 잡고 싶어 하십니다.
오늘부터 아주 작은 것부터 시작해 보면 어떨까요. 아침에 눈을 떠서 스마트폰을 켜기 전에, 오늘 하루 마주할 소소한 걱정거리들을 하나님께 먼저 툭 털어놓아 보세요. "하나님, 오늘 발표가 떨리는데 제 입술을 지켜주세요", "오늘 그 친구를 다시 만나는데 미워하는 마음 대신 사랑하는 마음을 주세요"라고 말입니다.
와이파이가 눈에 보이지 않아도 스마트폰을 믿고 쓰듯,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언제나 여러분의 일상 속에서 가장 좋은 길을 예비하고 계신 그분을 향해 오늘 하루도 작은 신뢰의 발걸음을 내딛어 보기를 바랍니다. 그 평범한 일상의 순간들이 쌓여 여러분만의 단단하고 반짝이는 믿음의 스토리가 만들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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